제목 : 네~~~ 너무 재미가 없어요
이름: dding
작성일: 2005-05-30
조회: 6,595
때는 바야흐로 태백산 눈꽃축제가 한창이었던 모년도 모월 모일.. ^^
팀장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열차상품인데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태백산 눈꽃상품 가이드를 할수 있겠냐는 물음에 대답은 "네~"라고 꿀떡같이 해놨습니다만 대답뒤에는 엄청난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몸매가 몸매라 산이랑도 안친할뿐더러 열차상품은 처음 진행해본다는 저의 말에 팀장님은 종합안내소 앞에서 손님들 맞이하여 열차표와 일정표, 우리 손님임을 알수 있는 목걸이를 나눠드리고 같이 기차타고 가서 대절해놓은 버스타고 잘 안내해 드리면 된다는 아주 간략한 설명뒤에 팀장님도 함께 가신다는 희소식을 말해주시더군요.
또한 태백산을 등반하는것이 아닌, 도착후 점심식사후에 눈꽃축제장과 석탄박물관, 눈썰매장에서 두어시간 노신후에 구문소와 황지연못을 안내해드린후 다시 열차를 타면 된다는 좋은 일정 하나와 더불어 기차시간이 네시간정도되니까 자료도 그때 더 공부할수 있을거라는 인도까지 해주시니 무언들 못할까 싶었습니다.
태백산은 소시적 친구들과 여행다닐때 아자아자 가본곳이라 가이드로서는 처음이고 선수인 팀장님까지 모시고 가니 "정안되면 팀장님을 가이드 세우고.. ^^; " 라는 얍삽한 생각까지 하면서 자료란 자료는 다 긁어모아버렸습니다.
평소 다른 상품들이야 버스안에서 공부할 묘책이 없으니 그전날까지 열심히 열심히 공부하고, 나름대로의 멘트도 생각하는데, 열차타고 네시간 간다고 하니 나름대로 게으름이 발동했나 봅니다.
자료집 만든후에 한번씩 읽어보고, 지도보면서 근처 지역들을 살펴본후에 설명할 이야기 조금 준비하고.. .. 잤습니다. ^^:
여행당일..
종합안내소 앞에서 손님들께 왕복 열차표와 일정표, 목걸이를 나눠드리고 꼭 열차시간 맞춰서 탑승해달라는 말씀도 드리고, 저도 기차를 타려고 짐을 챙기는데..
아뿔싸~ 사고났습니다.
세상에나 어느 나쁜사람인지 청소하시는 분의 만행(?)인지 공간이 없어서 바닥에 내려놓았던 자료집이 없어진겁니다.
순간 앞이 깜깜하고 어쩔줄 모르는데 우리의 팀장님 옆에서 한마디 하십니다.
"내가 바닥에 뭐 내려놓을때 불안하기는 하더라.. "
어쩌겠습니까.. 이미 엎지러진 물이요. 없어진 자료인것을..
이제 남은것은 팀장님을 잘 구워삶아서 태백산 이야기를 듣는것이지요..
헌데 더 야난났습니다. 선수인 팀장님과 자리가 떨어진 것이지요. 것도 저는 5호차량, 팀장님은 7호차량입니다. 이젠 자료 모으면서 한번씩 읽어보고 주변지역 조사해놓은-그것도 한번만 쭈르륵 넘기면서 읽어보았던 자료만으로 손님들을 현혹(?)시켜야 합니다.
꼬실땐 꼬실지라도 1호부터 7호차량까지 이리저리 찢어져있던 손님들 좌석을 왔다리 갔다리 두번정도 하고 나름대로 어찌할까 싶어 전화로 다른가이드들한테 정보를 구하니 다들 한마디씩 합니다.
"잘해봐~!!!! 으하하하.. "
본인들 일 아니라고 무지하게 즐거워합니다.
제 걱정이야 어찌되었던간에 열차는 제시간에 태백에 도착해서 대절해놓은 버스에 올라타니 이제부터 가이드의 시간입니다.
우선 인사 이쁘게 잘하고.. ^^
태백산이 어쩌구 저쩌구 ... 짧게 여행지 설명에 들어갔습니다.
보통 여행지전에 여행지 설명을 하는지라 그때까지는 좋았죠. 기차역에서 눈꽃축제장까지 시간도 얼마 안걸리는지라.. 능숙한 가이드역할을 하면서 손님들에게 무조건 실실거리며 식당을 안내했습니다.
아마 그날 손님들 속으로 생각하셨을겁니다.
"오늘 가이드 언니는 무조건 웃기만 하네.. "라구요.
산채비빔밥과 된장찌개도 맛있었고..
눈까지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꽃축제장은 그야말로 환상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자란 제가 제 옷위로 떨어지는 눈 결정체를 처음으로 봤던 날이기도 합니다.
환상적인 코스가 끝난후 이제부터는 기차안에서 기차게~ 공부하고 설명 잘해드려야지 했던 가이드가 자료 잃어버리고 어버버해야 하는 어리버리 가이드의 실력.. 뽀록날 코스랍니다.
선수인 팀장님~!! 웃기만 하십니다. 잘해봐~!! 라고 하시네요. 뒷자리에서 벙긋벙긋 웃으시는데 얍삽하게 꼬셔서 "가이드 해주세요~"라고 꼬실려던 마음도 웃음따라 어디론가 가버립니다.
어쩝니까.. 설명시작~!!
구문소가 어떻고 저떻고 이어서 황지연못까지 이어지는 설명을 하다가 말이 막힙니다.
이럴때 손님들이 좋아하는 전설따라 삼만리를 시작해야겠네요. 다행히 전설좋아하는 제가 그나마 열심히 읽어봤던 전설~을 장황하게.. 열심히 설명하고 나서 씨익 웃으면서 손님들께 물어봤습니다.
"전설이 너무 장황하죠? 재미없으셨겠어요.. "
"네~ 재미 너무 없어요.. "
이말이 끝나자 마자 뒤쪽에서 초등학생 손님 냉큼 대답합니다.
그때 제얼굴위로 떠오르던 난감함..과 무색함이란..
자료잃어버렸다고 조신히 자백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가 너무 이쁘지 않냐고 손님들 콕콕 찔려가며 서로 웃어버렸던 열차상품 첫번째인 태백산 눈꽃축제..
그 이후로 저에게는 두가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행 몇일전부터 자료집 열심히 보는것이 아닌
반복학습과 되도록이면 정확한 설명과 재미있는 전설따라 삼만리~를 준비하려고 그나마 노력하는 현상. ^^
언제 어디서 어떤 돌발상황이 터져도 한시간가량은 여행지 이야기로 손님들을 즐겁게 만들수 있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철칙이 두번째 현상이죠..
배운게 있으면 잃은것도 있다고.. 역효과~!가 나오네요.
그날의 눈꽃축제 이후로 저를 따라 여행온 다른 가이드분들이 한마디씩 하십니다.
"더 떠들라구 하면 아예 여행지부터 서울까지 떠들고 오겠구먼.. ^^"
가끔 이렇게 혼자만의 황당한 사건을 겪고나면 하나씩 손님들 마인드로서의 가이드로 재정립되나 봅니다.
하지만 자료를 읽어버렸던 그 황당함보다는 눈이 너무 이쁘게 와서 눈꽃 결정체와 얼음조각이 너무나 이뻤던 태백산이 생각납니다. ~
꽁지: 그뒤로 눈꽃축제상품을 열심히 다녔는데 그날만큼 눈꽃축제를 이쁘게 봤던 날은 없었다는 제 말이 그날의 손님들께는 약간의 위안이 되실런지요. ^^
-end-